1. 서론
아인슈타인에 의해 유명해진 공식 E=mc2이라는 것을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핵에너지는 1kg의 물질량에 250억 kwh의 에너지가 대응한다. 2022년 우리나라의 연간 전력소비량이 5,479억 kWh이니 이는 겨우 20여kg의 물질에서 이론적으로 나올 수 있는 전기에너지의 양이다. 이런 계산을 한 과학에 대해 우리는 머리를 숙여서 경이로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핵에너지에 대한 찬탄으로 이어진다. 바닷가에 가서 바께쓰에 모래를 가득 퍼 담아서 이것을 가져다가 군고구마를 굽는 통 같이 생긴 어떤 통에 집어넣었더니 모래는 감쪽같이 없어지고 거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동안 쓸 만한 양의 전기가 아무런 공해도 배출하지 않으면서 1년 동안 흘러나온다고 상상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경외심과 찬사가 나올 것이다.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 총량은 1년에 3,766,800Ej이라고 하는데, 이는 위의 공식으로 계산하면 41,853.3톤의 물질량에 해당한다. 그중에서 인간세계가 각종 형태로 이용하는 에너지량은 500Ej에 불과하고 이는 5,555.6kg, 약 6톤의 물질이 소멸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연간 6톤 정도의 물질이 태양 위에서 사라진 대가로 다른 공해물질의 부작용 없이 지구상의 인간들이 에너지를 이용하고 사는 것이다.
이렇게 놀라기만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기만 하는 것은 좀 바보스러운 일이다. 태양이 지구와는 1억5천만 km의 거리를 두고 공중에 떠서 그처럼 물질을 끊임없이 빛과 열에너지로 바꾸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핵에너지 생산 공장 역할을 하는 덕분에 지구상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다른 부작용 없이 살아가고 있다.
과학을 수천 년 동안 발달시킨 인간이 E=mc2이라는 공식을 겨우 발견해 내고 그걸 가지고서는 무모하게도 태양을 흉내 낸 핵에너지 생산 공장을 지을 생각을 한 것이다. 문제는 그 공장을 지구에서 달만큼 떨어진 공중에 지어서 그곳의 방사능이 지구상의 생명체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태양을 흉내를 내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렇게 할 건설능력이 안 되어 지구상에서 핵분열 원리를 이용한 공장을 지으니 방사능 문제를 처리하는 데 커다란 무리가 따르게 된 것이다.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태양에서 지구 표면에 보내주는 에너지 3,766,800Ej 중에 7533분의 1에 해당하는 500Ej만을 에너지로 이용하고 있는 마당에 왜 태양을 흉내 낸 핵발전소를 위험스럽게 지구상에 지을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말인가? 공중에 떠 있는 태양이 공중에 공장을 세운 건설비용이 포함된 에너지 요금을 내라고 요구라도 했다는 말인가?
따지고 보면 화석연료 화력발전소, 수력발전소, 풍력발전소 같은 시설들은 모두 공중에 떠 있는 태양 핵 에너지 공장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태양에너지를 의존하는 그런 발전소들도 전기라는 산물을 생산하면서 나오는 환경에 미치는 부작용 때문에 생태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태양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듯이 태양의 에너지 생산원리를 흉내 내는 발전소를 멀리 우주공간이 아닌 지구상에 지으면서 부작용이 없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렇다면 1kg의 물질이 사라지고 250억 kwh의 에너지가 나온다는 과학공식에 정신을 잃지 말고 잘 살펴보아야 한다. 250억 kwh라는 에너지의 대가는 1kg당 10원 정도 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1kg의 모래만이 아니다. 당연히 인간과 생태계의 건강과 안전에 끼치는 영향도 모래 1kg이 없어지는 데 따른 영향 수준이 아니다.
2. 핵에 대한 환상의 조성에 들어간 비용
위의 간단한 공식에서 시작된 핵에너지에 대한 순진한 환상은 1940년대 초에 발생한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으로 극적으로 확대된다. 4.5톤의 중량을 가진 리틀보이라는 핵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져 광선과 열 폭풍으로 폭심지(爆心地)로부터 반경 500 m 이내의 모든 생명체는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 34만 명 중 20만여 명이 방사능과 고열, 그리고 후유증으로 죽어갔다. 폭탄 파편의 비산이 아닌 에너지의 힘으로 이런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3일 간격으로 투하된 핵폭탄의 결과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노라고 하는 일본 천왕의 육성 메시지가 방송되어 핵무기의 힘으로 한반도가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것으로 역사가 쓰였고 이런 핵무기를 손에 쥔 미국은 1949년 러시아가 핵실험을 할 때까지 도전할 수 없는 최강대국이 된다. 그것만이 아니라 한반도가 1945년 일본 식민지 재배에서 벗어나자마자 핵무기 보유를 뒷받침으로 하는 미국은 소련과의 사이에 어떠한 타협에도 관심이 없어서 한반도가 분단되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는 민간인 수백만 명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을 당하였으니 이런 배경에는 핵무기 보유로 신격화된 미국의 힘을 믿은 한국정부의 권력 남용이 있었다. 1954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에너지 개발 방침을 발표한 Atom for Peace라는 연설이 있었을 때 핵에너지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던 대중들이 큰 기대를 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핵에너지에 대한 환상은 핵무기 투하로 희생당한 수십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서 달성된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조선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왜 그 사람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도시에 당시에 살고 있었는지 이런 인간들의 사정은 일반인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핵무기의 위력을 증거해 주는 일시에 죽음을 당한 수십만 명에 속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이렇게 포장된 핵에너지 생산 시설의 개발에는 막대한 국가의 연구자금, 건설을 위한 정책자금이 들어갔고, 안전 관련 보험법상의 법적인 혜택이 부여되었다. 그런 것은 강력한 에너지 공급원의 개발을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한 해 농축우라늄 수입량은 430톤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발전량은 176,054GWh이다. 이는 7.042kg의 물질이 사라지면서 나오는 에너지 수준이다. 그렇다면 투입되는 농축우라늄 430톤 중에 7kg을 제외한 나머지는 핵폐기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안정된 물질이 아니라 핵종(nuclides)이라고 불리는 방사성 물질들로 이루어진다. 이중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 계열의 핵종들이 95%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핵연료 재처리는 이런 물질들을 걸러내는 공정이다. 문제는 이런 물질들을 재처리해서 나오는 물질들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 외에 다시 핵에너지 생산에 재투입하는 것은 전세계 어디서도 상용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핵발전이 끼치는 영향은 7kg의 원료물질이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데 따른 자원 소멸의 영향이 아니라 430톤 대부분을 고준위 핵폐기물로 발생시키는 데 따른 영향이 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처리방법을 뛰어 넘는 것이다.
핵에너지에 대한 환상이 이런 문제를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고 핵에너지에 대한 맹신의 여론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제는 과연 핵에너지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지, 아니면 거꾸로 경제가 핵에너지 생산 체계를 떠받치기 위해 갖은 희생대가를 치르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3. 핵에너지의 경제적 측면
핵에너지는 일시에 폭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핵무기의 형태로 보관되거나 핵발전소에서 전기의 형태로 생산되어 공급된다. 그런데 핵무기라는 제품은 최종 제품의 형태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이를 합법적으로 보유하는 5개국이 과점 형태로 보유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유엔의 NPT조약을 통해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핵무기는 북한의 이른바 핵+경제병진 노선에서 보듯이 방위산업 분야의 재래식 무기 조달비용을 절감해 주는 가성비가 높은 안보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비를 지출해야 하는 국가경제 측면에서 가성비가 높은 방위산업제품이고 경제성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경제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보유하는 것은 이미 같은 제품을 많이 비축해 놓은 선발주자인 국가들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고 유엔을 통해 경제제재 대상이 된다.
이런 모든 경제 외적인 측면들을 고려할 때 핵무기라는 제품의 생산이 경제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유엔의 핵무기 관련 국제법 자체가 불공평하고 기득권 국가들이 부리는 횡포이고, 그 기득권 국가들에서는 핵무기는 틀림없이 경제성이 높은 안보수단일 뿐 아니라 국제정치경제 무대에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물론 그 출발점은 78년 전 미국의 핵 투하다.
핵발전소의 전기생산 산업은 어떤가? 에너지 산업의 경제성은 투입하는 원료의 조달비용, 에너지 생산시설의 건설 및 유지관리 비용, 폐기물처리비용 등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비용항목에서 안전과 환경 관련 비용이 중요하다. 그런데 EU에서는 녹색산업 분류체계(taxonomy)에 원자력 발전을 집어넣는 문제를 검토하면서 각 단계별 안전과 환경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그 분석 결과를 검토하여 판정을 하면서 결국 평가 대상인 원자력 발전에서 원료 조달 단계를 제외한 채로 원자력 발전을 녹색산업에 분류하고 말았다. 원료 채취 단계에서의 인체 및 생태계에 미치는 환경영향이 다른 발전소들에 비해 나쁘게 평가된 분석논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시설의 건설 및 유지관리 단계에서 경제성은 어떤 안전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사용수명을 얼마로 잡을 것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물론 원자력 발전소는 대기와 수계, 토양으로의 방사능 물질을 차단하고 사고위험을 방지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경제성은 국민경제적 측면에서 생산자, 소비자 전체에 미치는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고, 해당 시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미치는 효과만 별도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경제성이 높다면, 보상의 방식으로 현실적, 잠재적으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에게 보전을 해 주면 모두의 복지가 올라간다는 공리주의적 논리가 적용된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신뢰하지만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근 주민들이 불치병이 걸려 수명이 단축될 확률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이에 대해 보상을 받으려면 그런 병들이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거주한 주거상태와 인과관계가 입증이 되어야 하는데, 역시 유엔에 속한 원자방사능의 영향에 관한 국제연합과학위원회(UNSCEAR)는 원자력 발전을 하는 나라들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구성한 위원회로서 이 문제에 대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각국에서 법적 분쟁에서 궁극적인 가이드라인으로 통용된다.
돈도 필요 없고 내가 살던 땅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람들의 바람이 무시되는 것과는 별도로, 아프면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겠다는 사람들의 입장도 합법적으로 간단하게 무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체제에서는 원천적으로 국민경제적 경제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공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앞에서도 언급한 핵폐기물의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답이 없는 상태다. EU에서는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 설계도를 보고서 그런 계획대로 된다면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해 주었을 뿐이다. IAEA가 일본이 제출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계획에 대해서 평가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서 국가나 국제기구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다수 시민들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하면서 스스로 혼란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자기방어 기제 때문인지, 아직도 그들의 무책임한 업무처리 방식을 인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4. 출구를 찾아서
여기까지 서술한 것을 본다면, 핵에너지의 이용 문제는 국제적인 정교한 법적인 틀 위에서 모든 것이 평가되고 결정되고 추진되는 것이기에, 그 출처가 IAEA이든 EU Commission이든 수많은 보고서에서 떠돌아다니는 수치들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성을 평가하는 데 참조할 자료가 될 만한 신뢰성을 지니기에는 부족하다. 핵무기 피해자이든, 핵발전소 인근 건강피해자이든, 방사능 오염수로 피해를 보는 수산업 종사자들이든 현실적으로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정치적, 시혜적인 지원금 이상으로 법적인 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의 인권선언과 국제법을 가지고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국제 정치 전문가들도 국민경제를 분석단위로 연구를 하는 경제학자들도 지금의 보건, 의료, 법률, 군사, 엔지니어링 전문가들과 한 데 휩쓸려서 국가와 국제기구가 맡기는 일을 해 주고 있을 뿐 현실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핵에너지의 실체를 온전히 바라보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핵에너지 분야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진동한다.
그런 거대한 포장과 위선 아래서 핵발전소는 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 지역을 사람들이 떠나는 지역으로 만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만든다. 국가가 핵발전소를 통해서 저렴하게 공급하는 전기는 생산과 소비의 전체 분야에서 사람들이 인공적인 환경 안에서 자연과 격리되어 생활하게 만듦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상호 적응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자연에 적응하여 진화해 온 인간 문화와 심성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전기 에너지로 모든 것이 통제되는 안정된 실내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인간들이 만들어진다. 이런 추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연과 격리된 이러한 인공적인 환경이 설치된 도시와 달리 우라늄광산 지대, 핵발전소의 부지, 그리고 핵폐기물의 보관장이 있는 곳에서는 방사능 물질들이 자연과 완벽하게 격리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인간들에게 그 영향이 계속 가해지고 있다.
특정한 범위의 사람들의 자연과 격리된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특정한 범위의 사람들은 방사능 물질에의 노출이 별다른 대책도 보상도 없이 강요되고 있다. 이것이 핵에너지 경제의 특성을 말해준다. 이런 모습이 인간사회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퇴화시킬 것이 분명하니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세계적인 권력구조가 인간들을 볼모로 잡아 이런 이상한 저들만의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을 찾아 나서려면 먼저 우리가 어떤 미로에 들어와 있는지를 분별해야 할 것이다. 핵에너지 개발의 역사에 대한 탐구, 그 후의 역사과정에서의 피해자들의 체험을 공유하고, 일반 시민들이 그 피해자의 범위 안에 있음을 자각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핵에너지를 이용한 두 가지 제품 핵무기와 핵에서 나오는 전기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그 출발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