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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김준표 (손잡는 교회 목사)  |  view : 228

"시비스 파쳄, 파라 벨룸 (Sivis pacem, para bellum)"


이 말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서기 4세기 경 로마의 군사 전략가인 베게티우스가 한 유명한 말입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시에도 군대를 상비하며 아낌없이 군대에 투자하고 전쟁준비를 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많이 듣는 격언이고, 역대 보수 정권일수록 대북정책에 자주 적용하는 말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지금 정부는 어느 때보다 북한과의 대결, 대립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는 모양새입니다. 한미일 핵동맹을 강조하며 확장억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힘에 의한 대북 압박과 대결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힘에 의한 대북 압박은 위기와 분쟁을 확대 재생산하며 한반도에서의 핵 능력을 고도화할 명분을 북한에 제공하고, 한반도 분단을 연장할 뿐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평화”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우려했던 한반도 정세는 올해 초에 발표된 북한의 대남정책의 변화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연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있었고, 결정서가 채택되었습니다. 이 결정서는 새해인 2024년 1월1일 신년사를 대신해 보도되었지요. 이번 결정서는 단순히 한 해의 방향을 제시하는 신년사의 역할을 넘어 근본적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이 바뀌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보도문에는 ‘대한민국 것들’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 등 남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문구가 포함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결론에서 “불신과 대결만을 거듭해온 쓰라린 북남관계사를 랭철하게 분석한데 립각하여 대남부분에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할 데 대한 로선이 제시되었다.”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근본적인 방향전환이란 결국 사상과 견해를 바꾸었다는 말이고, 이에 따른 노선의 변화는 정책의 완전한 변화를 말합니다. 


신년사에 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그리고 여러 보도를 통해 북한이 말하는 남한에 대한 정책변화는 크게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보겠다는 선언입니다. 남북한의 분단을 고착시키겠다는 입장입니다. 둘째는 두 국가 관계인만큼 국제법에 따라 영토문제를 분명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고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에 이른바 해상 국경선을 그어 군사적 충돌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셋째는 대규모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전쟁도발로 여기고, 한반도에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난다면 군사적 대결과 국토평정을 단행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북한의 이러한 근본적인 입장변화에 대해 ‘북한은 원래 적화통일을 꿈꾸던 악당’으로 여긴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이를 핑계로 더욱 극단적인 군사적 대결을 충동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1972년 7.4 공동선언(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3대 통일원칙 합의) 이후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온 한반도 화해, 평화통일 정책을 지지해온 저 같은 이에게는 가슴 쓰라린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태우 정부의 1988년 7.7선언(화해협력 민족공동체 인식),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화해, 협력, 공존 약속), 김대중 정부의 2000년 6.15공동선언(개성공단 시작, 이산가족상봉 정례화 등), 노무현 정부의 2007년 10.4선언(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 문재인 정부의 2018년 평양공동선언(비핵화와 경제협력)을 어떻게 헌신짝 버리듯이 내던질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남북한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된 상황은 아닙니다.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현재 정부를 대신해서 다른 정부가 들어선다고 북한의 태도가 또다시 급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정상들의 여러 선언이 있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관계에서 자주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남북선언은 공염불이 되고, 남북의 신뢰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으니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게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한민족이 아니니 헤어지자는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에, 서로 죽여야 사는 적대적인 원수로 여길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정부와 정치권에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2월29일부터 3월21일까지 4대 종단이 함께하는 “한반도평화를 기원하는 DMZ 생명평화순례”가 진행됩니다. 사순절을 맞아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이라도 함께하려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평화운동의 씨앗을 뿌려보겠습니다. 한반도 주변에서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는 미국 핵전략 자산이 전개되는 대규모 한미(일)합동전쟁연습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겠습니다. 방어 목적이 아닌 선제공격이 전제된 전쟁연습은 언제든 군사적 충돌을 만들 수 있는 위험요소입니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중평화운동을 더욱 고민하며 실천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청년세대에게 남북화해와 교류의 중요성을 알리는 평화운동에 나서겠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작은 피켓을 제 가슴에 담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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