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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유엔사 가고, 평화 오라
김준표 (손잡는교회 목사)  |  view : 233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 너무나도 친숙하고 반가운 이름입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인민군과 중국의 중공군을 격퇴하고 남한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지켜준 고마운 다국적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은 1953년에 정전상태로 바뀌었지만, 유엔군은 아직 남한에 남아있습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판문점에 있습니다. 유엔사는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우리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이양한 뒤 지금은 정전협정 유지 관리를 주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경비대대를 파견ㆍ운영하고, 비무장지대(DMZ) 통과ㆍ출입허가권을 행사하고, 유명무실한 군사정전위원회를 관리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유엔군’은 유엔 깃발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미국통합사령부 산하의 “야전기관”일뿐이라는 사실을.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나 사무총장이 아닌 미국 정부에 통제되면서도, 유엔기를 사용해서 대외적으로 유엔 소속처럼 행세하는 ‘가짜 기구’라는 논란 중에 있습니다. 현재 유엔사의 실질적인 정치적 상위기관이 유엔이 아닌 미국 정부라는 사실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과 한미연합사 사령관 세 개의 모자를 동시에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유엔사는 1950년 한국전쟁 발생 직후 발족한 뒤, 국제법적 적법성 여부가 논란이 되다가 1975년 11월 18일 유엔 총회가 해체를 결의합니다.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도 1976년 1월1일부터 유엔사 해체를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 온 것이지요. 사라진 유엔사, 정확히 유엔이라는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인 유엔사가 최근에 좀비처럼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지난달 11월 14일의 일입니다.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한국-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를 한국 국방부가 처음으로 만들어 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나머지 16개국은 주한 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말이 국방장관회의였지 주한 대사관 관계자 모임이었죠. 이날 국방부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1953년 7월 전투병력 파병 16개국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에 또다시 유사 상황 발생 시 재참전하겠다는 결의를 했다. (이번에) 회원국이 이 약속을 다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질문이 생깁니다. 세계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의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국 미국을 옆에 두고 왜 갑자기 사라져가는 유엔사 좀비를 불러낼까요? 그만큼 북한의 군사 위협이 더욱 막강해졌고, 핵 위협에 대책이 없기 때문일까요? 실제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들 유엔사 회원국들이 다시 전투병력을 보내줄까요?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할 때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참여를 거절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거센 논쟁 끝에 국회 의결을 거쳐 비전투 부대를 보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어느 나라도 전투병력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국제 정세는 1950년대 미소 냉전시대와 크게 다릅니다. 


유엔사 활성화는 군사주권을 내팽개친 현 정부가 미국의 휘파람에 정신 나간 춤을 추는 꼴입니다. 소성리의 사드 미사일 기지와 마찬가지로, 사라져가는 유엔사 좀비를 되살리는 것은 북ㆍ중ㆍ러를 겨냥한 ‘아시아판 나토’구축을 공들여 온 미국의 바람일 뿐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구성된 안보 협력체)를 중심으로 ‘아시아판 나토’를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쿼드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지요. 인도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과 중국의 침공에서 남한을 구해준 미국과 굳은 동맹을 유지하는 것만이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 1950년대와 다른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스스로 군사주권을 되찾고, 북한의 위협에 당당한 모습으로 견제와 포용을 보여줄 수 있는 형님 국가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이 넘실대게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 땅 한반도에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불쌍하게 끼여서 우리 강산을 피바다로, 우리 형제자매들을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정의로운 전쟁은 없습니다. 승리하는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한 동맹도 없습니다. 미국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계산기로 두들겨서 동맹을 강요할 뿐입니다.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는 미 국익 수호와 증진일 뿐입니다. 국제평화나 정의, 윤리는 다음입니다. 한반도에서 한국전쟁 이후 전쟁의 문턱까지 가장 가까이 갔던 시점인 1994년 6월 바로 얼마 전, 클린턴 대통령이 5월에 내린 대통령 결정 지침 25호(PDD25)의 일부를 인용하고 이 글을 마칩니다. 갑진년의 청룡이 평화의 여의주를 물고 한반도를 휘감아 오르기를 기대합니다. 

 


“해외에 파병된 미군이 참여하는 평화를 위한 작전은 미국 외교 정책의 핵심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평화를 증진하는 목표를 추진하는 국가로서 행동할 때, 신중하게 기획되고 원만하게 수행되는 평화 작전이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유용한 요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이를 위해 이 지침은 평화작전에 동참하는 것이 미국에 선택적이고 유용하다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 2023.12.21. 고승우 ‘언론, 한반도 전쟁 발생을 방지할 정치를 견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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