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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안성용 (위례시민연대 공동대표)  |  view : 316

내가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과 처음 인사를 나눌 때 드리는 명함 뒷면에 큰 글자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가 있고, 그 아래에 단체가 추구하는 5개의 목표가 있는데, 1번 항목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있다. 이는 단체 안내를 위해 제작한 전단에도 같게 쓰여 있다.  

 

알다시피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가 절대다수의 시민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당당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지역의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적인 장마다 시민의 목소리를 내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변화시키려는 운동이다. 

 

원래 민주주의(데모크라시)라는 말이 인민(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전쟁과 이후 독재 정권 시절을 통해 금기시된 용어이다)의 지배를 뜻하는 데도 ‘풀뿌리’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스스로의 힘을 자각한 새로운 정치 주체들의 등장을 위함이다. 과거는 차치하더라도 현재도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빈민, 실업자, 여성, 노인, 청년, 장애인, 소수자, 이주자 등은 현실 정치에서 상당히 배제되고 있다. 자산이 없고 소득이 적으며 시간이 없는 이들은 선거 때 투표조차 하지 못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공적인 시민권을 실제로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이,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 조건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것은 단지 투표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일상 전반에 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눈높이와 마음가짐을 아래로 향한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15년간 자산과 소득 기준으로, 상층 10%는 계속 늘어나고, 10-20%는 유지되고 있으나, 중산층이라 불리는 20-50%는 감소하고 있고, 50-100%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강동과 송파의 가구 구성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산층도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또 이 불안감은 단지 경제적 불안감만이 아니고, 사회문화적 불안감으로 확대되어 있다. 즉 불안한 사회, 불안한 생태환경 등이 그것이다. 현실 정치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럴 때 지역에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위례시민연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볼 때 위례시민연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 서울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단체가 많다. 주요 의제에 대형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면 언론에 나온다. 서울시민들은 지역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보다 대형 단체를 후원하는 것을 선호한다. 실제 단체 활동은 하지 않고 주로 후원만 하려 한다. 

 

둘째, 선거구가 행정구역별로 되어 있는 점이다. 선거구별로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소지역이 점점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일단 주민들이 제기하는 풀뿌리 운동의 성과를 제도화하려면 의제 해결에 헌신할 수 있는 이를 선출직에 당선시켜야 하는데, 강동과 송파의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으므로, 동네에서 선거구별로 상설 활동을 조직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풀뿌리 운동의 의제, 참여자 숫자, 활동력을 고려하면 선거구가 작을수록 대응하기가 어렵다. 또 이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원래 취지인 ‘주민자치’(풀뿌리 민주주의)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 이양)가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해당 의제를 가진 주민이나 지역 단체의 활동가가 무소속으로 독자 출마하여 당선되면 좋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정당보다 강한 기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정당들은 양보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 정당 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당선되면 당선자가 정당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점들이 생긴다. 그래서 당선자와 시민단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넷째, 시민단체 활동을 선거 출마를 위한 일종의 경력관리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이 활동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한편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단체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오래되었다. 이런 흐름이 지역 단체들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섯째,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행동력을 키우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힘이 든다. 풀뿌리 운동이 기획하여 실천한 것 중에서 반응이 좋은 것들은 정당들이나 구청에서 아이디어를 가져간다.  

 

여섯째,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당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 대형 단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들은 많고 계속 생겨난다. 누군가는 현재 이 일을 하고 있고 또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인 건강한 풀뿌리가 사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모든 모임이 관변단체가 된다. 강동과 송파의 경우 이미 상당 부분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사람, 이른바 활동가의 재생산이 매우 어렵다. 활동비가 없거나 매우 미약한 활동비를 받으면서 일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2019년부터 위례시민연대는 매년 시민 참여형 사업을 하나씩 확장하고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분야는 4가지이다. 

 

첫째, 풀뿌리 시민의 힘을 기르기 위한 학습 활동이다. 
활동가 양성을 위한 학습 모임, 생활 법률 강좌(자영업자 노동자 주거 약자 청년 등을 위한), 시국 관련 강연과 토론회, 생태 강좌(기후위기 등), 인문대학(역사, 문화 등)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 시민 자치의 힘을 키우기 위한 시민 행동이다.
평화의소녀상 시민모임 활동, 기후행동, 행정 바로잡기 시민모임, 시국대응(사회 현안에 대한 성명서 발표, 서명 운동, 집회, 연대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셋째, 따뜻한 사회를 위한 나눔 활동이다.
집수리 봉사 활동, 노래와 악기를 배우고 나누는 활동, 장애인 운영 매장과 연계하여 물품을 모으고 기증하는 활동,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밥 나눔’ 활동, 우리 농산물 나눔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넷째, 각종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의 폭을 넓히고 또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현재 위례시민연대가 하는 모든 활동에, 회원은 누구나 어떤 일이나 참여하고 싶은 만큼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활동에 회원이 아닌 분들을 모셔올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성심껏 안내하고 있다. 

 

나는 위례시민연대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함께 행동하는 비회원분들이 당장 위례시민연대의 회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학습 활동은 참여가 가장 쉽다. 아무런 제약도 비용도 없고 누구나 편하게 참여할 수 있다. 시간만 내면 된다. 물론 시간 내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다. 이를 고려하여 가능한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편 시민 행동이나 봉사 활동은 시간을 내거나 용기를 내거나 점심 한 끼 정도의 비용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참여하기가 조금 어렵다. 하지만 역으로 말 그대로 ‘짬’을 내서 짧은 시간 참여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위례시민연대의 많은 활동을 물 위에 돌을 떨어뜨리면 생기는 동심원으로 생각한다. 돌을 여러 개 떨어뜨리면 파동이 서로 영향을 준다. 마치 이것처럼, 어떤 분은 특정 활동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여러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분도 분명히 있다. 또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 노력하고자 하는 분들이 반드시 많이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위례시민연대는 서울에 있는 지역단체들 중에는 가장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단체 중 하나이다. 지역에서 활동을 통해 가지는 영향력도 큰 편이다(송파보다 강동은 상대적으로 작은데, 노력해야 할 과제이다). 정당들이나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단체들이 항상 의제들에 대해 연대 요청을 해오고, 주민들이 여러 새로운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해온다. 

 

위례시민연대가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계획과 방법은 매년 제출하고 있다. 물론 이는 고정적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변할 것이다. 앞으로 긍정적으로 발전하는데 회원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논의가 가장 중요하고, 참여했던 일들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며, 비회원들의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훨씬 나은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제안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1인 1개 시민단체 가입’ 운동을 하자. 단체에 가입하여 후원하고 활동하자. 우리가 노력한 만큼만 세상은 변한다. 조직화된 시민의 힘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정당도 권력도 이를 우습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단체도 관계없지만 가능한 지역의 풀뿌리 단체라면 더욱 좋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장 기초이며, 동시에 현재 한국 정치의 근간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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