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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세상 10] 코로나로 무너진 예술분야 예산집행의 유연성을 간청하며 세부내용 목록
연자 박정인 교수
제목 [인권과 세상 10] 코로나로 무너진 예술분야 예산집행의 유연성을 간청하며
등록일 2020-04-07
조회수 879

코로나로 무너진 예술분야 예산집행의 유연성을 간청하며

-법과 예술은 태양과 꽃이다-

사람은 풀 한포기 물 한모금이 없으면 죽는 연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완벽한 것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유일한 신의 피조물인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이고 그러한 예술적 표현이 인간을 다른 생명과 명확히 다른 위대한 존재로 구분지어준다.

요즘 문화융성 시대, 문화정부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예술법에 있어서 공공부문은 과연 어느 범위까지 문화를 지원 내지 개입하여야 하는가. 특히 각 협회나 지방자치단체들의 볼멘소리의 주요 내용은 정부 예산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예산, 회계, 인사규칙을 엄격히 그대로 따르다가 본 목적을 달성하는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예산을 계획을 세웠으니 무조건 써야 한다는 중앙정부식 예산집행방법을 그대로 특수한 경우나 상황이 변경당한 때에도 강요당함으로써 원래의 목적이었던 문화예술의 지원과 향유라는 목적은 뒤로 밀리는 꼴이다.

최근들어 코로나로 대부분 예술지원 예산들이 변경승인되고 있고 국가의 규정은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다양하고 가변적인 상황에 탄력적으로 예술계의 상황에 대응하지 못해서 그 결과 국가지원 사업을 받고 있는 예술가와 공무원들 사이에 갈등이 커진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생각지도 못하는 저작권자가 나타나 저작권료를 주어야 하거나 불시에 가처분이 신청되어 편성이나 상영, 상연시기가 미루어지거나 생각보다 이용자의 숫자가 목표에 달성되지 않고 준비과정에서 스태프나 보조연기자들이 늘어나고 재료비가 앙등하며 진행비가 늘어나는 등 정부의 획일적인 예산지침을 수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할 때마다 중앙정부 공무원들은 지방자치단체나 협회에서 모두 동일하게 써도 문제없게 규정을 고쳐달라고 자문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나는 혈세 사용에 대해 표준을 추구할 뿐이지 완벽한 표준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세금을 낼 때 보건복지부는 얼마 쓰고 여성가족부는 얼마 쓰라고 정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타당한 목적에 따라 예산을 단체나 개인에게 집행할 때 보다 더 유연하게 목적의 달성을 위해 1년이 아닌 여러해에 걸쳐 다양한 승인을 통해 예산을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하여 올해에 긴급한 일로 불용액이 있으면 차기년도에 그대로 불입해 주는 등 여러 유연성이 요구된다. 파티에 나갈 때는 파티복을 입고 잠을 잘 때는 잠옷을 입어야 하는 데 왜 모든 국민이 공무원이 되어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환경에서 예산을 집행한다고 하여야 하는가.

사람들은 표준이라는 편의성 있는 말에 참 위로를 쉽게 받나보다. 우리 인간의 삶에 표준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최소 생활비와 최소 기관운영비는 요구되지만 매해 동일한 표준으로 금액을 무조건 소진하는 방식의 예산집행에 대해서는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 목적달성식 예산집행 방향성을 두고 고민해 볼 때이다.

공무원이 되면 절차나 형식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음은 이해하지만 정량적 성과보다 정성적 성과에 대해 보다 고민하고 논의하여 예산의 운용을 공무원의 신뢰 아래 연간 내에서가 아니라 연간 3~5년 내와 같이 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만드는 방법으로 이해하여 효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사실 뉴욕을 비롯하여 해외 많은 국가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 단체에서 문화정책이라는 업무를 따로 담당하는 기관과 부서를 두는 것은 당연시 여겨져왔다. 그러한 부서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문화향유권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문화는 복지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법령의 정비에 대해 문화입법과 복지입법은 함께 영향을 분석하여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공연예술은 현장예술이고 사람들이 모일 기회가 차단되는 작금의 코로나 사태와 같은 경우 불용액으로 인하여 해당 단체나 개인이 아예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현재 올해식으로 예산을 집행하면 차기년도 사업 축소를 우려하는 업계의 우려가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화예술행정가의 유연한 집행방식이 창의적으로 승인되어야 한다.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집행하고 있으니 무조건 그에 따른 예산집행지침을 따르라고 강요하기보다는 문화예술입법과 정책은 사회복지법제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예술을 감상하는 향유층의 만족을 중심으로 예산집행의 성과지표가 생겨나길 바란다.

지나치게 공무원들이 길든 방식의 예산집행을 민간에게 요구하면 진정한 복지로서의 예술이라는 꽃은 시들어버린다. 태양(정부)은 어디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지 꽃(민간)에 다가가면 꽃은 시들어버리므로 문화예술 예산 집행에 있어 중앙정부의 성과지표를 지나치게 강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술과 법은 친화적이어야 하고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지원정책에 있어 기준을 함께 만들어야 하는 파트너이지만 중앙정부는 정부의 중앙기조에 잘 부응하는 지방자치단체를 격려하는 수준에서 각 지자체가 처한 문화복지의 독자성 형성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그리하여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국가지원금을 받는 모든 예술가를 표준화하려는 모든 법들에 반대한다. 문화가 복지라고 할 때 단순하게 예술가에게 연금을 주는 형식이 아닌 대다수 예술가의 예술지원정책에 그동안 국가가 경제성과지표로 들이댔던 잣대는 모두 소거하고 재고하기를 바란다. 예술가가 그 사업을 통하여 행복하여야 그것을 나누는 이용자도 함께 행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예산집행 잣대로 인해 사랑받는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에 문화예술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법은 더 이상 예술에게 우산이 되어주는 잣대가 아니다.

법은 인간이 누구나 행복함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예술지원정책을 만드는 것이고, 문화복지의 본 목적을 잃은 문화예술지원, 코로나나 긴급사태 등으로 무너진 예술계의 예산 집행을 일률적인 성과지표로 차기년도에 불이익하게 하는 것은 지양해주기를 진심으로 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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