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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진보의 소비 세부내용 목록
연자 심우기
제목 [수필] 진보의 소비
등록일 2019-12-07
조회수 631

진보의 소비

심우기 (전 가천대 강사, 시인)

 

진보란 무엇인가 혁신과 끊임없는 변화이다. 낡고 오래된 것에 정체되지 않고 발전되고 창조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 진보나 소위 진보라는 자들이나 세력(?)이 자기 스스로 혁신하지 않고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과거의 명망이나 운동의 전력을 가지고 위세를 떠는 정도가 아니라 이것을 상품화하여 파는 것이다. 물론 가장 잘 팔리는 곳은 정치판이다. 그 외에도 언론과 대중시장에서도 진보 혹은 혁명은 상품화되고 있다. 종편에 나오는 패널들과 일부 시사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체화되지 못한 진보나 운동은 그저 표피에 그치고 내용과 실체가 없는 빈 껍데기가 많다.

소위 현실정치에 입문한 이들도 보면 과거의 이력이나 전력을 가지고 지역정치를 하고 패거리 정치와 파당 혹은 빠 문화를 만들고 있다. 여성 운동가입네 하는데 전혀 여성운동의 관점이나 운동의 관점에서 지역 정치를 풀고자 하지 않는 경우도 필자는 보고 경험해 보았다. 이런 이들은 각종의 특혜나 정부지원 등을 받고, 유사 아류의 집단들을 끌어들여 후진적 정치문화를 양산하고 있다.

내로남불 이라는 용어가 소위 보수나 얼치기 진보 모두 해당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인사문제나 특혜 등에서 말이다.

우리 사회에 진보적 가치나 이념들이 과거보다 분명 많이 확산되고 공유되고 있다. 그런데 진정한 가치와 실현보다 포장된 이미지로 전락하여 진보가 소비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본다.

정봉주나 안희정, 이재명 등등의 경우에 있어 이들이 진보인지는 각자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이들이 주장했던 진보적 가치나 믿음은 희화화 되거나 가치전락하게 된 이유도 자본의 상품화 전략에 말려든 게 아닌가 싶다. 사람 중심사고와 철학 정치의 폐단은 우리는 많이 보았다. 그들을 영웅시하고 특별화하고 싶어하고 추종하려는 대중추수주의 또한 진보가 소비되는 예의 한가지로 볼 수 있다. 그들 중심의 셋트주의나 종파주의 혹은 빠 문화(난 종빠주의 라고 부른다)를 만들어 자기와 다른 상대에게는 적대시하거나 경원시하고 자신들이 추종 지지하는 자는 맹목적으로 과신하는 우를 저지르고 있다. 또한 의견에 다른 것에는 극도의 멸시와 조롱으로 분열의 정치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진보가 양분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퇴행으로 소비된다고 볼 수 있다.

진보를 먹이로 하는 사업 혹은 시장은 정치 팟캐스트 프로그램과 정치 컨설팅, 여론조사기구, 연구소 등이 아닌지 싶다. 이런 프로를 들으면 격렬하고 원색적인 까발림과 욕설, 비난 등 이외에도 상대에 대한 디스 등이 종종 나오고 이를 통해서 그들은 종종 사람 중심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돌 팬처럼 성인도 정치인의 빠가 되어 거짓뉴스에 휘둘리거나 사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파당과 진영논리에 빠져 과오를 정확히 보고 비판 수용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옹호 지지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의 조국사태는 이런 점에서 쓰라린 부분이 많다. 조국수호라니 거기다 정경심 수호까지. 이는 진보의 분화와 분열을 초래하고 하나로 보였던 진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내게 하였다.

진보언론의 대표적 예는 인터넷을 통한 김어준, 주진우, 유시민, 그 외 유투버 등을 볼 수 있다. 진보의 아젠다만으로 먹고 살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언론시장의 등장은 주류 기존 언론 시장의 도전이고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런 창구를 통하여 대중은 환호하고 정보를 듣고 소통을 한다. 또한 확산되고 공유하여 정보력의 파급은 실로 엄청나다.

그러나 이런 진보 마케팅이 말장난이나 수사에 그치는 경우는 많은 폐단을 가져올 수 있다. 무조건적 비판과 비난에서 대안과 모색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 실행과 실천력의 동력은 사라지고 담론과 이야기만 되는 경우가 진보 소비의 역설이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진보 지식인이나 정치인의 상품화는 책이나 강연저술 등을 통해서 또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통해 소비되고 있다. 우리가 꿈꾸던 혁명이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이는 쿠바 혁명의 영웅 카스트로나 체게바라, 베트남의 호찌민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을 그린 영화나 사진, 그리고 노래 등이 자본주의 심장인 뉴욕에서 미국 남녀노소가 불문하고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 의 정치혁명가들을 그린 티셔츠를 입고 활보하는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을 우리는 왕왕 본다. 그러나 이들의 생전의 이념과 가치, 신념은 묻히고 상품으로서만 시장골목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의 소비 혁명의 상품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다시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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