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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세상 5] 운명에 대한 모두의 배려 세부내용 목록
연자 박정인 교수
제목 [인권과 세상 5] 운명에 대한 모두의 배려
등록일 2019-11-13
조회수 137

운명에 대한 모두의 배려

 

박정인(해인예술법연구소 소장)

 

시대의 소음이라는 책이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모두가 주목할 만한 음악세계를 만든 것은 어쩌면 스탈린 시대가 만들어 낸 운명이라는 내용이다. 우리 모두 운명이 있다. 그것은 이면의 원리는 모르지만 부모가 많은 것을 결정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 유년시절에는 DNA와 부모가 조성해주는 가정 환경에서 그렇게 자유로운 아동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밖 청소년들과 근로 청소년들, 결식(빈곤) 학생들과 탈북 학생들, 다문화 학생들과 운동선수학생들과 장애 학생들,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주목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중 오늘은 근로 청소년들과 장애 학생들에 대한 진정한 배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때로는 배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독이 될 때가 있다.

초등학교 도움반’(특수학급)에 재학 중이었던 많은 장애인 학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는 일반 학교를 거의 가지 못한다. 때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에 특수학급이 있었지만 해당 학교가 이미 장애인 학생 수용 가능 인원이 과밀인 데다 교실이나 교사인력 등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또 다른 중학교는 도움반이 없었다. 나머지 학교들은 너무 멀었다. 초등학교 다닌 장애인이지만 중학교는 갈 곳 없는 것이 현실이고 특수학교는 이미 초등학교 과정때부터 꽉 찬 상황이다. 장애인 특수교육법은 장애인은 학교 배정과 관련해 비장애인보다 우선권이 있으며 장애인이 일반학교에 진학할 경우 학교는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선언적일 뿐 현실은 법이 정한 규정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12일 현장체험학습을 비롯하여 다양한 체험에 참가하지 못한다. 담임교사는 부모에게 아이가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며 불참할 것을 요구하고 부모는 대부분 이를 거역할 수 없다. 소풍 같은 경우는 직장인 어머니가 회사를 연차내고 따라갈 수 있지만 12일 같은 체험에서는 학부모가 학생들 사이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역시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가기 위해서는 재학생 또는 학부모의 70% 동의 (해외는 90% 동의시) 가 필요하게 되면서 안전을 중요시 여겨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특수학교는 70% 동의를 쉽게 얻지 못해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이 어려운 학년이 종종 있다. 한 학급에 30명인 일반학교에서는 ‘70% 동의를 쉽게 채울 수 있지만 한 반에 4~6명이 수용되는 특수학교에서는 재적학생의 70% 찬성을 얻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여학생이 많거나 한 반에 한두 명이라도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불참 의사를 밝히면 전체가 갈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정작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활동이 배제되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당일 체험학습이나 12일 활동을 거부하는 것은 어떤 사유로든 불법이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42항 각 호 및 제38조의 2에 따르면 수업 및 자치활동, 그밖에 교내외 활동에 대한 참여를 배제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34항에 따르면 교육책임자는 특정 수업이나 실험·실습, 현장견학, 수학여행 등 학습을 포함한 모든 교내외 활동에서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의 참여를 제한, 배제,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정책의 구현이 가능하도록 국가는 솔루션을 모을 때이다.

근로 학생 또한 학교에서의 지도와 배려, 지역사회의 각성이 요구된다. 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중에 잠을 자는 학생이 많은 주된 원인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과 별거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와 용돈을 벌어야 하는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중고등학생들은 기본적 권리와 인격적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노동현장에 투입된다.

원칙적으로 중고등학생 고용사업장은 반드시 가족관계증명서와 친권자(또는 후견인) 동의서를 비치하여야만 하며 18세 미만 아동은 유해, 위험 업종 종사가 금지된다. 사용자는 임금, 근로시간, 휴일, 휴가, 취업 장소와 종사할 업무가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직접 교부해야 하며 임금은 돈으로 본인에게 전액을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에 지급하여야 한다. 성인과 달리 1일 근로시간은 7시간이며,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당사자와 합의에 따라 11시간, 1주일 6시간 한도에서만 장할 수 있다. 연기, 운동 등 특별한 재능에 의한 노동도 예외없이 청소년의 야간근로(오후 10~다음날 오전6)와 휴일근로는 금지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넘어서는 근로 학생들을 성인들은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우리는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생물은 후대를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우리의 본능 역시 그러하다. 교육환경에서 운명에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차별받고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성찰이 부족한 탓이고 그들에게 생명으로서 해명조차 부끄러울 것이다.

우리 눈동자가 검은 부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어둠속에서 성찰할 때에만 세상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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