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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세상 (1)] 나는 왜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운동가를 존경하는가. 세부내용 목록
연자 박정인 교수
제목 [인권과 세상 (1)] 나는 왜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운동가를 존경하는가.
등록일 2019-08-02
조회수 221

인권과 세상 (1)
나는 왜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운동가를 존경하는가.


박 정 인(해인예술법연구소 소장, 단국대 IT법학협동과정 교수)


인간과 나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빛을 향해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더 깊은 땅 속에 뿌리를 박는다.
공생의 고수인 나무가 지구의 절반을 조용히 덮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침묵속에 서로 뽐내지 않으며 때로는 자기 희생, 내려놓음, 나눔과 섬김 그래서 무한의 세계를 향해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생명체이다.


인간이 인권을 배우는 목적도 나무처럼 살고자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인간이 이 땅에 무한의 세계를 향해 살아가려면 때로는 서로 배려하고 때로는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공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인 것이다.


인권이란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 제헌국회가 발표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서 유래하여 이후 ‘Human Rights’ 로 표기하고 전세계가 이해하고 있는 관념이다.
인권의식이란 일상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를 인권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인권 침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원인을 파악 해결하려는 의지와 행동을 말한다. 즉, 인권을 향한 지식, 가치, 사회참여 라는 세가지 요건을 완성하였을 때 비로소 인권 의식이 있는 행동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 인권의식으로 사회참여와 연대를 통해 구체적 실천 의지를 가지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법규를 제안하고 이를 시민에게 설명하여 함께 합의해 나가는 노력은 매우 귀한 것이다.


이미 세상은 좌파와 우파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행위양식간의 변명과 충돌로 계속되어 왔다. 이기주의자들은 인권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어떠한 대가도 챙길 수 없는 사람들인 이타주의자들을 자신의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한편 이타주의자들은 눈앞에서 부조리를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본능일 뿐이고 그것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이기주의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난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냐고 비난한다.


어찌했든 누군가는 발생하고 있는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대응을 하여야 하고 현대사회 시민의 조건은 변화를 촉구하려는 사람들을 지지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들을 막아설 권리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성장하고 있고 사회가 진보되어가는데 있어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이타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타주의자들의 운명이 필연적이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독립운동을 외친 사람이 있었기에 나라의 독립이 있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와 국가에 변화를 촉구한 사람이 있었기에 세상은 보다 인간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 아무도 인권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실천가가 없다면 분노사회, 갈등사회, 폭력사회의 골은 보다 깊어질 것이고 사회 곳곳에서 힘의 불균형으로 억압과 차별이 만연할 것이다.


인권의식이 없었던 세상을 돌아보자. 유교문화와 가부장적 사회구조, 36년간 일제의 식민통치, 남북 분단과 장기간 군부독재로 상명하달식 조직문화의 만연, 경제적 고속성장으로 심각한 빈부격차와 황금만능주의, 고진감래형 학력과 학벌주의와 경쟁교육, 인성교육의 부실과 세계 자살률 1위의 오명, 그러한 대한민국의 성적표가 좋은 성적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인권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인권의식을 사회운동의 지표로 삼는 자이다. 2001년 5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 2012년 1월 26일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권에 대해 특수성을 주장하는 학자도 존재한다. 각국이 처한 특수성이 있는 경우 인권은 법이 인정해준 기본권 범위 안에서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인권은 어디까지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인간의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의미이고 보편적이어야 하며 일방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호적인 것이며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보다 우리는 신경을 써야 하며 국가 권력이 언제나 당연한 것이 아니므로 사회변화를 요구하는데 소극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사회운동가를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좋은 사회운동가가 되어 분쟁이 있는 곳에 조정자가 되고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대안을 만들어 나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가들이 사회와 국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요구할 때 결국 모든 답은 인권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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