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 | 박정인 교수 |
---|---|
제목 | [인권과 세상 4] 기득권은 무례하다. |
등록일 | 2019-11-05 |
조회수 | 5423 |
기득권은 무례하다 박정인(해인예술법연구소장,법학박사,단국대학교 IT 법학협동과정 교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 위원) 옛날에 베르사이유에 사는 앙투와네트 왕비가 백성이 굶주리고 있다고 하자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하라." 고 하였다지만 이미 인권의식이 있다는 법대 교수들조차도 인권의 인자도 이해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A 교수는 장애인문화예술정책에 대해 내가 발제한 자리에서 장애인가족으로서 장애인의 예술향유권과 교육권이 얼마나 처참한지 말하였더니 “장애인가족인 척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절대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타인에게 내비치지 마라. 불편하다.”라고 하였다. 장애인가족인데 어떻게 장애인 가족이 아니라고 하라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라서 쉽게 남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내비치지도 않는다. 나는 단순히 학술발표를 한 것뿐인데 빈자나 약자들의 이야기자체를 경청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말하는 A 교수의 평가를 들으며 명성도 높고 내가 감히 같이 자리를 하기에도 힘든 기득권이라서 기득권을 향한 나의 장애인 인권을 고양시켜보려는 의도는 차갑게 무산되었다. 국가위원회에서 만난 B 교수 역시 나를 엄청나게 좌절시킨 교수이다. 보통때 그분의 책을 즐겨 읽고 인품이 높은 교수라 믿었기에 나에게 관심을 상세히 보이길래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몇몇 설명을 하였고 정책에서 쉽게 입안되지 않으니 힘을 보태달라고 하였더니 나에게 “스스로 하라.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어 직접 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박사님은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 하면 될 것을 누구에게 왜 부탁을 하는가. 변호사시험을 보지 않은 것을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것으로 핑계를 삼지 말고 직접 하는게 좋다” 고 하였다. 그래서 “로스쿨을 가고 변호사시험에만 몰두하는 동안 장애인 자녀는 어떻게 하는가, 변호사들은 변호사의 몫이 있고 나는 나의 몫과 나의 길이 있다”라고 항변하였더니 “모 과학자는 남편이 그만두고 아이를 본다라고 하면서 너도 그렇게 해라” 라고 조언하였다. 그 교수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즉, 변호사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훌륭한 변호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약자들의 생활개선을 변호사만 할 수 있다는 그 자만감은 무엇인가. 그때 생각했다. 약자의 삶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자들, 기득권은 무례하다고. 끝없는 동정을 원하는게 아니다. 약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도 안되어 있으면서 장애인관련 학술대회에 오지 말았어야 하고 자신의 솔루션만 밀어부칠거면 자애로운 척 하면서 말하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없다고 그들과 얘기해봤자라고 말하던 한 장애인단체의 운동가 이야기가 오버랩되었다. 그래도 학문하는 분들이니까 나는 마음을 주었고 기대가 있었다. 나는 명색이 법학을 평생 학문과 밥벌이로 하는 사람들조차 경청이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데 어떤 기득권이 우리 약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cosplay costumes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지쳐서 피로할 수 있다. 나는 그들에게 섭섭한 적도 있었지만 이해한다. 한쪽 이야기만 들으면 안되는 것이 공무집행 아닌가. 하지만 지식의 순결을 외치는 학자들이 약자를 위해 보편적인 이론을 연구하지 않으면 강자를 위한 연구는 굳이 인문학에서 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발견만 하면 될일일텐데 말이다. 그리하여 학자들이 나이들수록 고집만 세지고 경청조차 하지 않고 약자의 인생을 아무렇게나 재단하고 조언하고 자신의 솔루션을 따르지 않으면 한심하다고 치부하는 모습에서 나는 약자로 살아야 하는 비루함을 느낀다. 그래서 약자들끼리 서로 위로만 하다가 약자들 중에 누군가 히어로가 나와 기득권이 되어주기를 바랬던 약자들의 그 열망 그 자체가 서러웠다. 약자들 중 선거를 통해 기득권이 되면 그는 또 기득권다운 행동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늪에 빠진다. 약자들 편만 설 수 없고 약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표도 걱정하여야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맘놓고 약자의 대변인은 약자를 위해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약자들을 정말 위한다면 약자들을 떠나지 않고 약자들 곁에서 hublot replica 차라리 목쉬게 외치고 있는 자들, 사회운동가들만이 인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득권은 어떻게 설명해도 약자들을 루저로 생각한다. 단순히 세상에 뿌려진 불운 중에 우연히 그 불운에 다가서 버린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고 개척하고자 하는 수많은 약자들에게 힘을 보태주기는커녕 제대로 경청하거나 관찰하지도 않고 약자들의 인생을 한심하게 만드는, 힘을 빠지게 하는 기득권들의 말, 행동, 눈빛들 그들 앞에서 백치처럼 상처입고 백치처럼 분노가 치밀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하게 태어나서 불완전하게 죽는 자신이 replicas relojes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그저 상상만 하는 존재에 불과한걸. |
이전글 | [인권과 세상 5] 운명에 대한 모두의 배려 |
---|---|
다음글 | [인권과 세상 3] 아픈사람의 인권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