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 | 심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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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 불 |
등록일 | 2019-10-23 |
조회수 | 3921 |
불 심우기 불을 놓으면 살 것 같소 답답함과 서러움이 타버리듯 이물의 시간이 지나면 불의 시간이듯 지옥불이 몸을 휩쓸고 가고 혼자 이국의 땅 내동댕이 처져 내 뿌리의 서식지가 그리웠다 말이오 오욕의 역사가 된 몸뚱이를 닦고 씻어 보아도 원수의 동정이나 사과가 가당찮은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헛소리를 주문처럼 외우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치욕 어린 시간 가난이 망국이 온 몸과 마음을 불태우고 갔소 아무 것 남지 않아도 모질고 모진 질겅이같은 삶만 남아 대지 파고든 힘으로 살아 만나는 증언 내가 바로 전범의 증거요 피해자란 말이오 날개 잃어 쓰러져 죽은 혼이 활활 남태평양과 만주 필리핀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에서 타오르고 있소 죽지 않고 영원히 고향과 부모 친지 그리운 넋 노란 나비가 되어 내가 불이요 시퍼런 불이란 말이오 붉은 숲을 버리다 어린 농부의 얼굴에서 배고픔을 찾아낸 너는 단단한 돌배를 건넨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와 비수가 되는 날에 혓바닥에 가시를 심었다 붉은 혀엔 자꾸 가시가 늘어나고 할 일 없는 저녁 피곤함이 밀려오면 혓바늘이 돋아 빽빽한 말 숲 사이를 도저히 지나갈 수 없다 거미줄 걸린 하루살이처럼 버둥거리다 혀를 뽑히고서야 숲을 건넌다 한마디 말도 못한 체 산 박제가 되어 우듬지 끝에 걸려 꾸득꾸득 말라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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